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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추미애 법무부장관 프로필

추미애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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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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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프로필

 

 

나이 : 1958년 10월 23일 62세

고향 : 경상북도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직 :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혁신성장추진위원회 위원장, 제67대 법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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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부 장관 페이스북

 

추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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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 한양대학교 법정대학, 1982년 사법시험 합격

가족 : 서성환 변호사, 자식 셋

혈액형 : B형

 


 

약력

 

정계 입문 전

 

 추미애는 1958년 경상북도 달성군(1995년 대구광역시로 편입)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이 세탁소를 운영하셨는데 2남 2녀 중 셋째이자 차녀로 태어났습니다. 3살 무렵에 부모가 운영하는 세탁소에 도둑이 들어서 재산도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마침 이때 막내 동생이 태어났고 언니도 눈병에 걸리는 바람에 살림이 굉장히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3살 어린 나이에 부모 곁을 떠나 외갓집에 맡겨져 키워졌다고 합니다. 위와 같은 성장 배경으로 인해서 강한 '독립심'과 '반항적 기질', '기득권에 대한 분노'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대구남산초등학교, 구남여자중학교, 경북여자고등학교, 한양대학교 법정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재수 끝에 제24회 사법시험에 1982년도에 합격하였습니다. 1985년, 같은 대학의 캠퍼스 커플이던 서성환 변호사와 7년간의 연애 후 결혼해서 법조인 부부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추미애는 1982년 사법시험 합격 후 여기저기서 혼처를 제안받았지만 서성환이 1985년 사법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기다렸다고 합니다.

 

추미애 사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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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서성환이 전라북도 정읍 출신인 점이 걸림돌이었습니다. 당시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역감정이 극심했던 때였죠. 양쪽 지역 출신 사이의 결혼을 선뜻 승낙받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추미애 사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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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다가 서성환은 고등학생 때 당한 교통사고로 인해 다리에 장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추미애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국 결혼 승낙을 받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언론에서는 추미애를 가리켜, 그리고 추미애 스스로도 '대구의 딸, 호남의 며느리'라고 부른 것입니다. 한편 김대중 전 대통령도 추미애를 정계에 영입한 이후 "호남 사람인 제가 대구 며느리를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슬하에는 3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정계 입문 전에는 춘천지방법원, 인천지방법원, 전주지방법원, 광주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로서 일했습니다.

 

추미애 사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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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사 시절에도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는, 당돌하고 대차지만 자기중심적이며 반항적인 성격을 곳곳에서 유감없이 드러냈다고 합니다. 이는 춘천지방법원에 처음 발령받을 때부터 법원 내에서 유명했다고 합니다. 역시 판사 출신에 사법연수원 1년 선배인 신평 변호사는, 추미애가 1985년에 초임지를 지방(춘천)으로 발령받은 것에 분개하여 법원행정처에 가서 펑펑 울면서 여자를 지방으로 발령한 것은 부당하다며 항의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추미애 사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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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는 지방이라는 이유로 조직에서 배정한 임지에 대해 불만을 하소연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던 시절이라 이런 행동에 법원행정처 간부들이 몹시 격앙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추미애는 그런 일이 없었으며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법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경하게 대응했습니다. 결국 신평은 자신의 발언으로 추미애에게 상처를 준 데 대해 사과하며 한 발 물러섰으나, 너무 강렬한 기억이었다며 그런 전언을 들은 것까지는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춘천지방법원에 부임한 때는 아직 서슬 퍼런 전두환 군부 독재 정권 시기였는데, 추미애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추미애 사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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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로 인해 나이 어린 초임 판사에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만만하게 보던 주위 사람들에게 ‘껄끄러운 여성 판사’로 각인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이런 성격과 행보가 쌓이면서 ‘불의에 굴하지 않는 여성 판사’라는 평판도 얻게 됩니다. 이런 추미애를 주목한 것이 김대중이었습니다. 추미애가 판사 10년 차이던 1995년, 김대중은 정계 복귀를 위해 신당(새정치 국민회의) 창당을 준비하며 386세대 젊은 인재 영입 작업을 벌이던 중이었습니다. 결국 추미애는 1995년 8월 김대중의 영입 제안을 받고 고민 끝에 법원에 사직서를 내고 정계에 입문합니다.

 


 

정계 입문 후

 

추미애는 광주고등법원 판사로 재직 중이던 1995년, 당시 야당 총재이던 김대중 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부터 정계 입문 권유를 받았습니다. 이후 판사직을 사임하고, 같은 해 8월 27일 새정치 국민회의에 입당하여 정계에 입문하였습니다. 과거부터 대부분 검찰청의 검사 출신들이 장관에 임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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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부에서는 고등고시 출신 공직자들이 주요 보직을 독식하다가 인사적체를 없애기 위해 외청장 등의 보직까지 장악하지만 법무부는 반대입니다. 검찰청에서 성장한 검사들이 법무부 주요 보직을 맡다가 장관까지 올라가는 셈입니다. 다른 부처들과 달리 법무부는 고시 출신 공무원을 거의 받지 않습니다. 검사들을 행정공무원으로 활용해 왔기 때문이죠. 문재인 정부에서는 검찰개혁을 명목으로 비검찰 출신 인사, 특히 법학자 출신이 법무부 장관 자리에 임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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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법무부 장관 후보자였다가 논란으로 인해 사퇴했던 안경환은 서울대 로스쿨 교수였고, 첫 법무부 장관이었던 박상기 또한 연세대 로스쿨 교수였습니다. 두 번째 법무부 장관인 조국 역시 서울대 로스쿨 교수였습니다. 조국 사퇴 이후에도 학자 출신이 법무부 장관으로 많이 거론되었으며,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도 학자> 검사> 판사> 현역 의원 순으로 선호도가 높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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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실제 후보자로 유력했던 분들은 학자가 아니라 법조인 출신 정치인이였지만 변호사 출신인 전해철 의원, 판사 출신인 박범계 의원이 거론되다가 판사 출신으로 여당 대표를 역임했던 추미애 의원이 지명되었습니다. 2020년 12월 16일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위 결정과 문재인 대통령의 재가와 동시에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이는 내년 개각에 반영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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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아들 군 복무 기간 논란

 

 추미애 아들 서재휘는 군대 특혜 논란이 있었습니다. 아들 서재휘는 카투사 (평택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에서 군 복무를 하였는데 휴가를 과하게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카투사는 원래 외출과 외박이 다른 부대에 비해 잦기 때문에 별 문제없다고 여겼으나 휴가 미복귀 의혹 문제가 논란이 되었습니다. 추미애 장관이 여당 대표 시절 보자관도 아들 서재휘의 휴가에 개입됐다는 의혹이 있어 더욱 논란이 됐습니다. 앞으로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추미애 말

 

노 대통령의 탄핵 사유는 줄이고 줄여도 책으로 만들 정도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당시

 

 

익명의 그늘에 숨어 대통령을 재앙으로 부르고 지지자를 농락 한느 것은 명백한 범죄 행위다.

문재앙 표현에 대하여

 

 

검찰총장의 제 명을 거역했다.

검찰 고위직 인사 관련

 

 

윤 총장이 저의 지시를 어기고 지시의 절반을 잘라먹었다. 장관 말을 겸허히 들었으면 좋게 지나갈 일을  지휘랍시고 일을 더 꼬이게 만들었다.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 포럼

 

 

감언 유착이 심각하구나. 또 한 번 감탄하고 있다. 당장 수사해라.

아들 군 복무기간 휴가 관련 의혹

 

 

소설을 쓰시네.

회의 중 윤한홍 의원에게

 

 

일반 주부에 이어 젊은 층마저 투기 대열에 뛰어들었다.

수도권 집값 급등 현상